김영태 10주기 – 草芥(초개)와의 동행

김영태

2017.7.11-2017.7.23

~2017.7.11-2017.7.23~

김영태 10주기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同行 중인, 김영태
초개(草芥) 김영태(金塋泰)는 시인이자 무용평론가, 화가이자 서예가, 수필가였다. 우리 시대 마지막 보헤미안, 문화의 딜레탕트(호사가)라고도 불렸다. 스스로는 ‘초개(보잘것없는 지푸라기)’라고 자신을 낮추었지만, 지난 2007년 7월에 작고하기까지 이름 앞에 늘 이런 다양한 수식어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 번갈아가며 뚜렷이 그를 수식했다.

여러 분야에 두루 이름이 양명하다보면 낱낱의 깊이를 의심할 수도 있을 텐데, 김영태는 이를 비껴간다. ‘매혹’ ‘남몰래 흐르는 눈물’ ‘누군가 다녀갔듯이’ 등 17권의 시집을 발표한 시인으로서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갈색 몸매들’ ‘막간’ 등 13권의 무용평론집을 낸 평론가로서 서울문화예술대상(무용 부문)을 수상하고 무용평론가회 회장, 서울국제무용제 심사위원 등을 역임키도 했다. ‘징검다리’ 등 12권의 산문집과 여타 소묘집까지 합하면, 생전에 남긴 저서만 60권이 넘는다.

또한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화가로서 총 7차례의 그림 전시를 가졌고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시집 총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표지 그림, 여러 무용공연들의 홍보매체에 숱한 소묘와 글씨(캘리그래피)의 흔적을 남겼다.

이처럼 전방위 예술가로서 여러 예술분야에서 활활한 생애를 살다갔기에, 그의 주변에는 무용가, 시인, 화가 등 교유가 깊었던 예술인과 지인들이 유독 많다. 그들을 중심으로 <초개 김영태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었고, 2008년에는 <나의 뮤즈들>이라는 제목의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다. 3주기인 2010년에는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지인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던 김영태의 회화 작품들을 모두어 한 자리에 전시했다. 김영태의 ‘그림’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그리움’이 모인 전시이기에, 제목이 <그림과 그리움>이었다.

2017년 올해는 10주기가 되는 해다. 편집인 민병모가 “2007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직 난 그를 꼭 빼닮은 사람은 못봤다.”고 회고했듯이, 세월이 흐를수록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디에도 빼닮은 사람이 없는’ 김영태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져간다.

기일(7월 12일)이 포함된 7월 11일부터 23일까지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갤러리 류가헌에서 미술품수집가 이재준이 수집한 김영태 그림전 <草芥초개와의 동행>을 중심으로 유고집 <초개일기>의 출판기념회 등 각종 행사와 공연이 펼쳐진다.

행사
11일(화) : 수목장으로 묻힌 강화도 전등사의 나무를 찾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12일(수) : 한국춤비평가협회에서 여는 ‘초개 김영태를 생각하는 저녁’ – 원로 춤비평가 이순열 선생과 건축가 김원의 회고사와 한국무용가 황희연, 해금연주자 강은일 등의 공연이 이어진다.

전시 2관 _
미술품수집가 이재준의 김영태 그림전 <草芥와의 동행>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우리는 만났다.
音樂이 흐르고 있었기에
‘안네소피무터’ 바이올린 독주회
동행했다.
내 옆구리 한 쪽을
音樂人 이재준
나보다 젊은 그가.

김영태 시 ‘同行’ 전문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음악인 이재준. 미술품 수집가이자 클래식음반애호가로 알려져 있지만, ‘김영태’라는 이름과 연결 지어지면 경외와 감탄의 ‘그 이재준 선생’으로 바뀐다. 단순히 팬이라는 말로는 혹은 지음(知音), 애독자, 애호가 요새 널리 통용되는 ‘덕후’라는 말까지 동원해도 딱히 이재준과 김영태의 관계를, 그 결의 촘촘함과 깊이를 재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는 김영태가 출간한 60여 권에 달하는 책을 모두 읽었고 또 모두 수집했다. ‘선생이 그 자그마한 손으로 밤새워 조탁한 문장들을 함부로 읽을 수는 없어서’ 아직도 그 책들을 읽을 때는 침향을 피우고 단정히 앉은 자세로 읽는다.

이재준은 비매품이라 구하지 못한 소묘집 <往來>의 여분을 얻고 싶어 직접 연락한 것을 계기로 김영태와 첫 대면했다. 그리고 2007년 작고할 때까지 김영태의 마지막 5년에 동행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초개선생과 이승에서 5년 간의 동행’이었다. 김영태의 ‘遊於藝(예술에서 놀다)’에 함께 한 것이다. 시 속 표현대로라면, 초개의 ‘옆구리 한쪽’에 그가 있었다.

음악연주회 13회, 화랑순례 31회, 국립박물관 관람 3회, 무용관람 2회, 대전, 대구로 지방여행 2회, 식사 동행 100여 번 등 ‘예술현장’에서부터 음식점까지 김영태와의 ‘동행’을 일지로 촘촘히 기록했다. 아직도 김영태가 그리우면, 생전에 그와 함께 갔던 식당에 찾아가 그날의 음식을 먹으며 미각으로나마 또 그를 그린다.

“이선생과 함께 이 찬란한 햇빛 속에서, 이 쑥부쟁이들을 일 년만 더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서울시립미술관 정원을 걷던 마지막 동행에서 한 초개의 말도 그 일지에 담겨있다.

이번 전시 <초개와의 동행>에는, 이재준이 미술품수집가로서 수집한 김영태 그림 40여 점이 공개된다. 작고한 예술가가 세상에 남겨 놓은 작품 뿐만이 아니라, 작가와 그를 혹애한 소장가의 관계로부터 다시금 전방위 예술가 김영태를 회고하는 특별한 전시다.

생전 김영태의 목소리를 듣고 볼 수 있는 영상도 상영된다.

전시 1관 _
<초개일기> _ 김영태의 무용일기

“가진 것은 없지만 남이 보지 않는 것을 보고 느꼈던 정신 하나만으로 한 시대를 살다간 풍경인이 남긴 선물로 남아 줬으면 한다.”

<초개일기> 출간을 앞두고 김영태가 책의 머릿글로 쓴 글이다. 2006년 12월부터 출간을 도모했으나, 2007년 7월 황황히 작고하는 바람에 유고가 되고 말았다.

1969년 무용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틈틈이 기고한 글들과 1970년대에 쓴 일기, 그리고 1986년부터 『현대시세계』『객석』『춤저널』 『몸』 『정신과 표현』등에 쓴 무용일기 등이 수록돼 있다.

머릿글 말미에 ‘그동안 안 팔리는 춤 서적 열몇 권을 출판해 준 붕우 이규상 형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라고 적혀 있듯이, 김영태 선생과 인연이 깊은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가 10주기를 맞아 발행하는 책이다.

류가헌 전시1관에서 전시 판매된다.

규격 : B6판 480쪽
발행 : 눈빛출판사
가격 : 20,000원
■ profile과 작가 노트

초개(草芥) 김영태(金塋泰) 선생 (1936년~2007년)

(2007.7.12 03:50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별세)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사상계」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草芥手帖」「여울목 비오리」「결혼식과 장례식」등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음악 평론집, 무용 평론집 등 61권의 저서가 있으며, 1971년부터 2007년까지 8차례에 소묘 그림 개인전을 가졌다. 1972년 현대문학상, 1982년 시인협회상, 1989년 서울신문사 제정 예술평론상, 2004년 허행초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유니버설 키로프 발레 콩쿠르․ 서울 국제무용제 심사위원과 1989년 무용평론가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난 보통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
원고지 칸 메꾸는 세월이 어느새 30년 가까이 흘렀다. 남들은 나보고 그림쟁이라 하지 않는다. 글쟁이라고 부른다. 나는 글쟁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그림도 그리고 싶어진다. 어쩌다 외국나들이를 하게 되면 나는 제일 먼저 화방에 찾아간다. 장차는 그림을 그리게 되겠지 하며 화구들을 이것저것 골라 사가지고 온다.
지면이 있는 분 댁을 우연한 기회에 방문했을 적에 그 댁 벽에 내 그림이 붙어있는 걸 보게 된다. 쑥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내가 그리는 사물의 대상은 국한되어 있다. 피아노를 그리기도 하고 발레 포즈를 그동안 수없이 많이 그렸다. 나는 내가 그린 피아노를 ‘걸어 다니는 피아노’라고 가끔 말한다. 남들도 내 그림을 보고, ’저 피아노는 걸어가는 것 같다!’ 라고 웃는다. 내가 그린 피아노는 피아노 음악이란 잡지에 글을 연재했을 때 삽화로 곁들인 것까지 합치면 백여 대가 넘을 것이다.
나는 요즘 무용을 보러 다니고 무용평도 쓴다. 프로포숑을 자세라고 번역 할지? 나는 발레리나의 포즈를 피아노만큼 그렸다. 한동안은 토슈즈만 그린 적도 있다. 철저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닌다. 나는 보통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문득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언가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

* 이 글은 10주기를 맞아 인문예술교양지 3월호에 편집자 민병모가 꾸린 ‘회고, 죽은자들의 백과전서’에 수록된 초개선생의 글이다. 작가 노트로 대신한다.

 

이재준의 글

마음의 달이 서로 비추거늘
– 草芥先生과 이승에서 5년간의 同行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우리는 만났다.
音樂이 흐르고 있었기에
‘안네소피무터’ 바이올린 독주회
동행했다.
내 옆구리 한 쪽을
音樂人 이재준
나보다 젊은 그가.
(김영태 시 ‘同行’ 전문)

선생이 하세(下世)하기 일 년 전인 2006년 늦봄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회가 끝나고 하현달이 어스름한 돌길을 휘적휘적 걸으며,“오늘 ‘안네’의 검은 의상은 얼마 전에 잃은 부군에 대한 喪服일 거예요. 모차르트 K304번 e단조 바이올린 소나타가 오늘따라 애잔했어요.”
뜨락에 핀 산사나무 꽃의 여린 향이 침묵의 공간을 적셨다.

선생을 처음 뵙기는 2003년 늦가을 이었다.
“제가 선생님이 출간하신 책 52권을 읽었는데, 소묘집 <往來>는 비매품이라 구하지 못했어요. 여분이 있으신지요?”
“무슨 일을 하시는데 제 책을 모으세요? 찾아봐서 나오면 연락드릴 테니 번호 남겨 주세요.” 추석이 지나고 혜화동 엘빈 커피 집에 한 권 맡겼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고, 며칠 후 그 곳에 들르니 마침 선생이 계서서, 역사적인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서너 시간의 긴 대화가 있었는데, 나는 그간 선생의 책들을 읽으며 메모로 남겼던 음악. 미술, 연극, 무용에 대한 의문점들을 짚어나갔고, 선생은 어눌한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일일이 답변 하셨다. 선생께 드리기 위해 준비한 ‘Capet String Quartet’의 전집(cd5장)을 받고 기뻐하셨다.

일지를 살펴보니 선생과의 ‘예술현장’의 동행은 음악연주회 13회, 화랑순례 31회, 국립박물관 관람 3회, 무용관람 2회, 대전, 대구로 지방여행이 두 번 등 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선생과 식사 동행은 100여 번이 넘었다.
‘화가이며 시인이신 선생이 무용 쪽에 경도 되신 것 아닌가’ 해서 선생께 좀 더 많은 그림 그리기를 아뢰었고, 하여 도자화 작업도 내 주관대로 하게 되었다. 국민대 우수한 젊은 도예가가 백자를 빚고, 지하의 도예작업실에서 초벌구이 한 백자에, 코발트안료로 자유분방하게 그린 도자기가 20여 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꼬박 두 시간이 넘게 앉아서 붓을 휘두르던 삼매경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이대 후문 까페 ‘마비’를 무수히 드나들며, 선생의 그림들을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선생의 동부이촌동 수정아파트에서 말년의 거소를 옮긴 혜화동 아남아파트까지 소위 ‘김영태 사단’이라 칭하던 많은 藝人들이 빈번하게 왕래하였다. 그 끝머리에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도 있었다.
나는 시집을 읽을 때는 침향을 사르고 마음을 정화한 뒤 책을 펴는 습벽이 있다. 그 것은 굴곡진 역사의 격랑을 헤쳐 온, 그리고 되새김질하며 모국어를 다듬어 토해 내는 이 땅의 시인에 대한 외경심 때문이다. 특히 선생의 그 자그마한 손으로 밤새워 조탁한 문장들을 함부로 읽을 수는 없다. 산문집 그 어느 곳을 열어도 遊於藝[예술에서 놀다]의 격이 높은 경지를 마음 깊게 느낄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선생과 함께 이 찬란한 햇빛 속에서, 이 쑥부쟁이들을 일 년만 더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서울시립미술관 정원을 걷던 마지막 동행의 말씀이 되었다. 그 날 커피를 마시며 나는 가방에 있던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음반 ’벤자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Cantus in Memory of Benjamin Btitten)’를 카운터에 부탁 들려 달랬다. 두 사람 뿐인 텅 빈 공간을 울리는 그 곡으로 어쩌면 선생과의 이승에서의 전별을 예감했던 걸까?

최종태 조각가의 연남동 작업실을 찾아, 존경하던 박용래 시인의 시비(詩碑)위에 앉은 청동 소녀상을 다시 보자던, 김익영 도예가의 파주 공방에서 커다란 도자 위에 발레 극 ‘한 여름 밤의 꿈’의 ‘토슈즈를 묶는 헤르미아’를 그리자던, 길상사 담장 흐드러진 능소화를 보자던 그 작은 소망들도 빛바래 버렸다.

중국의 문학가 누쉰(魯迅1881~1936)이 문사였던 취추바이(瞿秋白1899~1935)에게 한 말 “인생에 있어 한 사람의 지기를 얻으면 족하다(人生得一知己足矣)”
그렇게 선생과의 5년의 이승 동행은 끝났다. 그러나 마음의 달은 언제나 서로를 비추고 있을진저.
이 재준 삼가

이재준
1950년 경기 화성 출생으로 아호는 松由齋(송유재)다. 미술품 수집가이자 클래식음반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다.

 

기획의 글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차리는 초개와의 저녁 식탁

해마다 장마철이 시작되는 초여름이면 나는 스멀스멀 마음이 먹먹해진다.
갑자기 쏟아지는 장마철 빗줄기를 피하러 구멍 난 비닐우산을 펼쳐든 기분이다.
6월 30일- 피나 바우쉬 8주기, 7월 8일- 석하 최현 선생 15주기, 그리고 7월 12일 -초개 김영태 선생 10주기. 올해도 어김없이 그들의 기일이 다가온다.

지난 봄, 어느 날 불쑥 류가헌 박미경 관장이 건넨 인사말
“김영태 선생 10주기인데 그냥 넘기실 건 아니죠?”
가슴이 철렁했다.
곧바로 지인 정영순 선생한테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태 선생 10주기 추모공연 준비하고 계시나요?”

실은 고 최현 선생 15주기 회고사진전에 즈음 225페이지 분량의 사진집 편집 코디네이터를 맡아 지난 5월을 잔인하게 보낸 후라 감당키 어려운 제안이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기획자의 이른 바 ‘소임’이라는 명분을 기억해내며 <초개와의 동행>에 지인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먼저 박미경 류가헌 관장과 미술품 수집가 이재준 선생을 만나고 건축가 김원 선생님께 이 비보(?)를 알리고 그리고 한국춤비평가협회 장광열 씨를 설득하고 이윽고 한국무용가 황희연, 해금연주자 강은일 씨 출연 요청까지… 이제 하늘의 뜻에 맡기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크라우드 펀딩 매칭 지원 사업에 감히 처음으로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난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던 초개. 그를 다시 만나러
조심스레 1주기 추모공연 <나의 뮤즈들>과 3주기 추모전 <그림과 그리움> 영상자료를 꺼내든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흔적이 너무 많다. 이른바 평생의 은혜는 곧 그리움이다.

– 공연기획자,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 장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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