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꽃팩토리 5기 사진전 – Dream Lap Project 2017

꿈꽃팩토리 5기

2017.6.27-2017.7.02

~2017.6.27-2017.7.02~

‘너와 나’ 혹은 ‘나와 나’를 한 시간대에 머물게 하는 사진

개인과 개인이 한 시간대에 머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표면적으로 함께 존재하더라도 흐르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봄이, 누군가에게는 겨울일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와 ‘내’가 한 시간대에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진’이다. 사진가 성남훈이 이끄는 꿈꽃팩토리 5기 일곱 명의 사진가들이 ‘너’와 ‘나’를 같은 시간의 궤도로 이르게 하는 사진을 펼쳐 보인다.

우혜미의 <행복(幸福)동>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계신 곳을 기록한 작업이다. 우혜미의 파릇파릇했던 봄은 부모님에게는 버거운 여름이었고, 할머니에게는 느린 겨울이었다. “인형이 하나, 둘 생겨날 때마다 부모님 출장이 길어졌다. 인형이 많아지는 만큼 부모님과의 약속도 늘었다 … 약속을 지켜야하는 인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서야 어머니의 감은 두 눈꼬리에 할머니 모습이 겹쳐진다.”는 그의 말처럼 이제야 모두의 시간이 한 장의 사진 안에서 겹쳐진다.

김건우의 <손때>는 작은 교회 목사였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찍은 것이다. 낡은 가방 속 손때 묻은 성경책, 구석구석 아버지의 손길이 닿아있는 교회는 젊은 날 아버지의 시간을 담고 있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짧고 소소한 순간들까지 짐작케 한다. 아버지의 나이에 이르러,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간다.

곽은비의 <각비일지>는 직장인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2평 남짓한 사무실 풍경을 담았다. 곽은비는 어릴 적 꿈꾸었던 미래와 지금 현재가 어긋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좁은 사무실을 스쳐 지나갈 풍경으로만 여겼다. 다른 곳에서의 시간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러자 마음이 더 괴로웠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았다. 어긋나 있다고 여겼던 것이 맞물렸다.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같은 시간의 축에 섰다.

윤대진의 <숨길>은 ‘이원재 씨’의 ‘비움’을 위한 여행의 발자취를 따르는 작업이다. 윤대진은 “스스로를 내려놓고 싶어 떠난다.”고 했던 이원재 씨를 수차례 찾아다니며 촬영했다. 어느 날 훌쩍 인생을 비워내기 위해 배낭을 진 그를 보며 사진가 자신이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떠올려본다. 이원재 씨로 대표되는 수많은 삶이 사진에서 만난다.

김나리의 <하나의 지금>, 심형호의 <000>, 이대환의 역시 ‘너와 나’ 혹은 ‘나와 나’를 한 시간대에 머물게 하는 사진들이다.

꿈꽃팩토리 5기 7인의 사진은 이제 전시을 통해 사진가와 사진의 대상뿐만 아니라 ‘사진을 보는 개인’까지도 같은 시간으로 데려올 것이다. 전시는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갤러리 류가헌 전시 1관과 2관에서 열린다.

 

작가소개

꿈꽃팩토리 5기

곽은비 김건우 김나리 심형호 우혜미 윤대진 이대환

꿈꽃팩토리는 사진가 성남훈과 함께 사진을 배우고, 사진을 찍고, 사진으로 재능을 나누는 사람의 모임이다. 꿈꽃팩토리 구성원의 작업은 여러 사진축제에서 선보였고, 의미로운 사진상을 수상했으며, 세상의 거울로서의 사진의 의미를 확장해 가고 있다.


사진가 성남훈
프랑스 파리 사진대학 ‘이카르 포토’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의 소속 사진가로 활동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객원교수로,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끌고 있다.​

 

전시서문

꿈꽃팩토리 5기 사진전
Dream Lap Project 2017

Dream Lap Project는 꿈꽃팩토리의 지속적 화두이다. 우리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 혹은 이미지 사회라 부른다. 매체기술의 발전은 이미지의 생산과 전달을 폭발적으로 빠르게 하여 대중들은 고도로 이미지화된 사회에 이미 깊이 잠겨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들의 욕망에 깊이 파고들어 주변의 사물을 개인화하고 일회성 복제품으로 만들어 소유하려 한다. 우리가 이미지를 욕망하는 것은 무한히 부풀려가는 이미지의 자기증식 욕망처럼 이미지의 욕망이 곧 우리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꿈꽃팩토리 7명의 사진가는 1년간 이를 충분히 학습하고 체화해 자신들의 주변과 내면의 이야기를 다양한 사진형식의 그릇에 담아 로 펼쳐 보인다.

 

전시작과 작업노트

곽은비 

각비일지
호기심 많고 겁 없는 성격이어서 서른 즈음의 나는 아마존이나 분쟁지역을 누비고 있을 줄 알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2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일하며 보내는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일상이 반복되었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사무집기와 서류더미 같은 정물뿐이었다. 답답했다. 그래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자주 생각했다. 관찰자인양 행동했다. 이 공간을 스쳐 지나갈 풍경으로 여겼다. 그러자 마음이 더 괴로웠다. 나의 시선이 닿는 곳을 사진에 담으며 비로소 주변을 진득하게 바라보았다. 새삼 이 공간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내 삶의 한 시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지금, 여기에 두 발 단단히 딛고 서있자고 생각했다.

김건우

손때

아버지는 작은 교회의 목사다

40여 년간의 목회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하셨다
그즈음부터 아버지는
조금씩 어린아이가 되어가셨다

아직 봄바람이 차갑던 날
이별할 시간도 없이
교회계단에 앉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손때 묻은 성경
낡은 가방
구석구석 손길이 묻어있는 교회
그 빈자리에서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며 이별했다.

김나리

하나의 지금

하나의 지금은
얇고, 불안하며, 불온(不穩)하다.

그 많은 지금과
수없이 맞부닥뜨려온
그야말로 지금에도
그것은 부서질 듯, 연약하나
무진(無盡) 힘이라도 있는 듯,
손으로 잡으려 하면
여전히 내게 불복(不服)하여,
금방 여기 나타났다가도
소리도 없이 공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장막 너머로
또, 도망쳐 사라진다.

그것은 몸을 비틀어
겹겹의 시간 속으로 사라질 때
중력을 벗어나 홀가분한 듯
빛나는 그림자를 던지곤 하는데,

심형호

가재울

갓+울=갓아울
갓아울>가사울>가자울>가재울

뉴타운 사업으로 시작된 도시정비사업이 ‘가재울’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모래내/서중 시장은 그 개발의 한켠에서 버티고 있다.
‘가재울’은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북가좌동을 통칭하는 지역이다. 1950년대 말 사라호 태풍 으로 발생한 수재민들이 집단 정착하며 인구가 급증했으며, 1960년대 후반에 지금의 모래내시장 일대에 서중시장과 모래내시장이 설립되고 홍제천에 사천교가 놓이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팽창하게 되었다.
빌라와 다세대 주택이 급증하던 가재울 지역은 2003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어, 기존의 모든 주택과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와 빌딩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로 한다. 척박한 땅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보상금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흩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가재울 한가운데에 시장이 있다.
서울 서북부의 중심 상권 이었던 모래내시장 일대는 이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주변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서 그 속도는 가속화 되고 있다. 이미 많은 점포가 문을 닫았고, 보수 공사가 진행 되지 않아 점포 천장이 무너지고 도로가 깨지고 있다.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재울 뉴타운 사업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났고, 새로운 사람 들이 정착을 시작했다. 시장 사람들은 스스로 변해가는 시간을 자신들이 잡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그 시간마저 놓아 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재울이 지도에서 지워 지고 있다
우혜미

행복(幸福)동

인형이 하나, 둘 생겨날 때마다 부모님 출장이 길어졌다.
인형이 많아지는 만큼 부모님과의 약속도 늘어났다.

진달래 화전(花煎) 부쳐주시던 할머니 손끝에 매달린 8살 개구 진 시절이었다. 빨래터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 따주시며, 치맛자락 속으로 부모님과의 약속을 숨겨주셨던 할머니셨다. 부모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도 인형놀이는 재미있었다.

시간을 돌아 할머니가 누워 계셨던 침대에 어머니가 누워 계신다. “치매1등급”이라는 의학적 진단이 내려지고 작아진 몸이 더 작아졌다. 어린 시절 무릎 꿇고서 약속을 지켰음을 고해성사 시키셨던 분.
약속을 지켜야하는 인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서야 어머니의 감은 두 눈꼬리에 할머니모습이 겹쳐진다. 항상 펼쳐 내밀어주시던 손바닥도 닮았다.

오늘도 어머니가 계신 <행복(幸福)동>에 시계초침소리만 유난하다.
생각이 멈추고, 가슴이 하얘진다.
아마도 멈췄던 것은 내 마음이었나보다.
윤대진

숨길

이원재
그가 떠나기로 결심한건 2016년 11월이었다.
거제 홍포에서 하룻밤을 같이하며 그는 내게 떠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를 내려놓고 싶어 떠난다고 하였다.

찬란하게 살아온 인생과 화려했던 과거도 그에게는 비우고 싶은 현실이 되어있었던 것이리라.

수차례 그를 찾아다니며 촬영을 하고 함께 하면서
나 또한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그를 통해 우리들과 나의 미래를 투영해 본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걷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인생배낭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이 되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길을 걷는 그의 발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본다.

반백년 살아온 인생을 덜어내고 털어내고 비워낸다 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이 밋밋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닌 듯하다.
그가 멋있는 건 ‘채움’을 위한 여행이 아닌 ‘비움’을 위한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이대환

F4

C3, H2, F4, F5는 비자의 종류들로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만 보이는 계급 아닌 계급이다.

보통 단기방문을 위한 C3비자로 시작하여 3년을 일하면서 거주할 수 있는 H2비자, 오랜 기간을 걸쳐서 재외동포를 위한 F4비자를 받게 되면 최종 안정권인영주권 즉, F5비자의 안정권에 도달한다. 물론 이 과정을 거쳐서 한국에 남게 될 쯤, 고향에는 집 한두 채와 가게 하나쯤은 차려 있을 것이며, 개인으로서는 거의 모든 경험과 위기를 다 넘겼을 것이다.

안산의 원곡동은 현재 외국인 비율이 인구의 44퍼센트 정도로, 조선족은 그중에도 64퍼센트정도를 차지한다. 이중 F4비자와 영주권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2-30년 이상 거주한 조선족들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버텨온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한국에 남아있기를 선호하며, 60세가 넘어도 계속해서 노동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이쯤 되면 한국 사장들로부터 돈을 떼일 걱정도 없으며, 시간외 수당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이다.

장기 거주한 조선족들의 일부는 매일 밤마다 주변 공원에서 열리는 사교댄스에서 볼 수 있다. 한편 과거의 인식과는 달리 현재 다방이나 매춘업에서 종사하는 대부분은 여행비자로 짧게 오가는 한족들로서, 대부분의 상대하는 대상이 중국어를 쓰는 조선족이나 한족이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본토에서 유입되는 한족이 늘면서, 점점 밀려나는 조선족의 젊은 세대는 앞으로 2-30년 내에는 찾아보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안정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F4 비자가 있고, 그것만 소유한다면 영주권은 시간문제이다. 그나마 이를 소지한 나이 든 조선족들은 매일 밤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공원의 야외 사교무도장을 향하며, 기간이 제한적인 H2비자 혹은 E9비자 소유자들은 다음날의 고된 노동을 위해 술에 젖어서 잠든다. 그러다가 가끔 일어나는 경찰의 불시검문에 불법외국노동자들은 가슴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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