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진 그룹전 – Who are We? 2

3.13-3.25

~3.13-3.25~

사진으로 묻고 사진으로 답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여러 명의 사진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1년 동안 작업을 하고, 그렇게 모인 결과물로 매해 기획전을 연다. ‘사진’을 매개로 사유하는 사진집단 <생각하는 사진> 이야기다. 저마다 성별과 연령, 개성과 아이디어가 다를 뿐 아니라 staged photo(만드는 사진)부터 스트레이트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까지 사진적 접근 방식조차 다르다. 이렇게 ‘다름’을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는’ 사진을 선보이는 것이다. 2013년부터 매해 기획전을 이어오다 보니,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는 이 그룹이 어떤 주제로 어떤 전시를 보여줄 지 기대케 된다.

이번 전시 <Who are We? 2>는 제목 그대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두 번째 질문이다. 2016년에 동일한 제목으로 기획전을 열었는데, ‘다양한 사유와 접근방식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회와 현대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 사진’이라는 평을 들었다. 다시금 같은 질문을 던진 이번 전시는 ‘We’의 의미가 거시에서 미시로, 전체에서 개인으로 좁혀진 형태다. 즉 ‘현대인의 정체성’이 아니라 ‘현대 속 나 자신’의 정체성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다. ‘나와 우리는 누구이며 당신은 누구인가?’

이영의 <기억 상자>는 기억 조각들을 담은 상자를 표현했다. 시각적으로 치환된 기억의 조각들은 낚싯줄에 꿰어져 기억 상자에 매달려 있다. “장소이기도 하고 사건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한 기억 상자는 저마다의 연속된 기억들을 안고 한 장의 사진에 담겼다. 기억상자들이 모여 이영이라는 개인의 세계를 구성한다.

임원상의 <양가감정>은 한 사람의 상반된 두 얼굴을 같은 화면에 보여준다. 신체의 다른 부위를 차단한 검정 배경으로 인해 얼굴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며 대비된다. 작가는 사진들을 통해 “이러한 모습을 띄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누구나 극명히 구분되는 두 얼굴을 내면에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승의의 <빵빵 할머니의 손주사랑>은 제목처럼 손자 손녀를 담은 사진들이다. “귀여운 손자 손녀의 모습 속에는 철없었던 때의 우리들의 모습이 남아있었고 어느 순간 불쑥 다 커버린 내 자식들의 모습들이 들어있다.”는 말처럼 아이들의 사진 위로 모두의 모습이 투영된다. 파릇파릇한 봄날의 손주들을 보며, 늦은 겨울의 할머니는 자신을 돌아보고 기억한다.

이주리의 <Ordinary>, 이수정의 <色 + 面 2>, 허윤정의 <사진, 함께 하다>, 민효기의 <The remains of 2017>, 이은재의<나를 돌아 보는 시간>, 김찬의 <The Crossing of Time> 역시 모두 우리가 누구인가를 고민하고 말하는 사진들이다.

<생각하는 사진>의 이번 전시 ‘Who are We?’는 어쩌면 <생각하는 사진>그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전시기도 할 것이다. 사진그룹들의 명멸이 이어지는 중에, 흔들림 없이 작업과 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이 그룹의 저력과 그 정체성을.

<Who are We? 2>는 3월 13일부터 2주간 두 팀의 릴레이 전시로 이어진다.

 

작가소개

1(3/13~3/18) 이주리, 이수정, 이은재, 허윤정

이주리, Ordinary, 40.5×40.5cm, digital inkjet pigment print, 2018

Ordinary

일상은 누구에게나 조금은 지루하고 변화 없이 흐르는 시간들이다.

나의 일상 속 시간과 공간 사이사이에 시선을 두고 담아본다.

그 공간 사이에 꽃.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 하려는 용기로 꽃에 다가가지만

꽃의 시간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삶의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태우고 가는 꽃처럼

내 남은 시간들도 그러하길 바래본다.

이수정, untitled, 60X60cm , digital inkjet pigment print, 2018

+ 2

빛은 사진의 근원이자 내 작업의 원천이다. 2017년 ‘색&면’을 주제로 발표했던 후속작으로 ‘빛’이 물들인 기하학적 도형을 작업해왔다. 지난 작업들이 페인트로 칠해서 얻는 결과물이라면 이번은 하얀 도형의 표면에 여러 가지 파장의 빛을 입혀 나타내는 색면추상을 시도했다. 형형색색의 대상은 빛에 의해 화려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오히려 어둠 속에서 자신을 침묵으로 알리는 고독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마치 밤하늘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들이 알고 보면 무한에 가까운 공간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외로운 존재들이듯이.

 

이은재

나를 돌아 보는 시간

반세기를 조금 더 살아보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의 꿈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것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어쩌다 손을 놓았던 것들이 있고

상상으로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지만 아직 해보지도 못한 것도 있고

또 운이 좋아 아직까지도 하고 있거나 다시 시작한 것도 있다.

꿈꾸어 보던 것을 새로 빨아 놓은 헝클어진 빨래 바구니에서

하나 하나 꺼내 들쳐 보고 개키듯이 작품을 준비해보았다.

빨래 바구니에서 잊고 있던 또 다른 꿈을 발견하게 될까?

허윤정, 사진,함께하다, 28X36cm, Photogram, 2018

사진, 함께 하다

산 있던 자리, 건물 올랐다.

나무 있던 숲, 굴 뚫렸다.

벼 살던 논, 길 났다.

물 흐르던 둔치, 놀이터 되었다.

잃고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는 세상, 어떻게 될까?

 

바람에 사람에

굴러 다니고 뭉개지는,

생명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한 녀석 한 녀석 색을 입히고

사각상자에 둘러 놓은 이유다.

 

만지고 쌓고 안아 보시라.

어쩌면 사라지고 없어질

우리들일지도 모르니까.

 

2(3/20~3/25) 김찬, 백승의, 이영, 임원상, 민효기

The Crossing of Time

나는 인도에 대하여 그리 잘 알지 못하지만 힌두교의 인도인들에게는 삶 속에 윤회가 깊게 스며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인생이 전생과 후생을 가로 잇는 이생이라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도인들의 모범적인 삶은 태어나서 맑은 영혼의 어린시절(#1)을 보낸 후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청소년기(#2)를 지나 자기 일을 찾은 청년기(#3)에 이르러 결혼도 하고 가족들을 건사하여 자녀들을 결혼시킨 후 중년기(#4)에는 그들의 종교적 수행에 정진하며 다음 생의 준비를 시작한다. 깊은 수행의 경지에 이른 장년기(#5)를 지나 노년(#6)이 되면 모든 물질적인 소유를 버리거나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거리로 나가 탁발을 하며 이생의 다리 끝에서 후생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 이생의 다리 시작부터 말미 또 그 이후까지 업이 쌓이는 과정이라면 이 것은 과연 시간의 흐름과 같은 방향만을 하고 있을까? 탁발로 생을 마치는 어쩌면 매우 고통스런 노년의 업이 맑은 영혼의 어린 시절의 과보 일까? 아니면 그 것이 오히려 해맑은 영혼을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영향을 미치기 위함 일 수도 있지 않을까? 환생하여 새로 맞을 어린 시절이 지금의 노년과 시간 흐름의 선상에 상대적 위치를 갖고 고정적인 인과를 갖고 있을까? 현대 과학에 의해 어차피 시간의 일직선적인 흐름은 부정되고 있지 않은가?

짧은 인도 여행이었지만 거기에서 만난 인도인들의 군상은 이런 시간의 흐름이 서로 엇갈리고 중첩되는 느낌을 주었다. 이 것을 표현하기 위해 생각해 보다 나는 풍선을 만났다.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품은 풍선들은 자기 몸이 곧 터져 없어질 지라도 자신의 위치가 시간과 정비례하기를 바라는 일념이 가득 차 있을거다. 풍선에서 나는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단순함에서 맑음이 나오고 맑음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는가?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끝에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 처럼 그리 유쾌하지 않은 힘든 종말이 있다. 그 것은 우리의 인생 뿐만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에 예외가 없어 보이지만 그 모든 것들은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교차하며 중첩되어 돌아가는 것이리라.

몸이 견딜 수 없어 부서지기 전 까지는 한 방향의 힘으로 올라만 가는 맑은 영혼의 풍선들은 나의 이런 작은 소회를 표현하기에 너무 적절한 도구였다. 인도인들의 연령대별 모습들과 상승하는 풍선들이 서로 교차되는 표현에서 자연스러운 조화를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인도인들과 맑은 풍선들에게 감사 드린다.

백승의, 빵빵 할머니의 손주사랑, 70x105cm, digital inkjet pigment print, 2018

빵빵 할머니의 손주 사랑

사진을 찍는다며 바쁘게 사진 소재들을 찾아 다녔던 내게 이제야 사진을 시작한 동기를 찾은 듯싶다. 내 아이들이 장성해서 가정을 꾸민 후 태어날 나의 첫 손자와 손녀에 대한 기대감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귀엽고 천사 같은 얼굴의 미소와 고사리 같은 손과 꼼틀거리는 모든 움직임들을 사진으로 담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사진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동안 사진 안에 손자 손녀의 아름답고 천진한 미소와 설레는 웃음들을 제대로 찍어보지도 못한 채 시간만 보냈었다

귀여운 손자 손녀의 모습 속에는 철없었던 때의 우리들의 모습이 남아있었고 어느 순간 불쑥 다 커버린 내 자식들의 모습들이 들어있다. 이 아이들은 내 자식들을 그리고 신랑과 나를 닮아있었다.

이영, Memory Box V Things, 90x60cm, digital inkjet pigment print, 2018

기억상자 : 사물과 사실(Memory Box : Things and Facts)

기억은 흐르는 시간을 거슬러 언젠가의 순간을 불러온다 객관적인 사실은 기억에 존재하지 않으며 기억은 선택적으로 남겨지고, 주관적으로 이야기된다 맥락 없이 맴도는 한 줄의 영화대사처럼 낯선 조각으로 남는다.

조각으로 남은 기억들은 맥락에서 벗어나 왜곡된 모습으로 재구성된다. 사진과 기억은 닮았다.. 사진가는 주관적으로 선택한 3차원의 모습을 2차원의 평면에 담는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프레임에 넣고자 하는 만큼 남긴다.

시간의 깊은 물속에 나의 기억상자가 가라앉아 있다. 상자는 장소이면서 사건이고 사람이다. 나의 부름에 상자 속 기억들이 끌어올려진다. 줄에 매달려 흔들리며 매번 다른 구성, 다른 각도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작품 Memory Box T에서 나무상자가 흙 위에 있다. 앞의 작품들은 과거의 기억이 있는 물속의 가상공간에 가상의 상자가 놓인 반면, Memory Box T는 내가 내일 기억 하고 싶은 것들을 담은 나무상자가 실재하는 공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임원상, Dad’s face, 60x90cm, digital inkjet pigment print, 2018

양가감정(兩價感情)

어떤 대상에게 서로 대립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혼재하는 정신상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것은 다분히 나의 이익에 부합되는 계산이 깔려있으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가면을 쓰고 대면한다.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인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들 속에, 지인, 친구, 가족, 업무, 이런저런 관계들 사이에서 나의 모습은 늘 양면성을 갖고 산다.

그런 양면성을 얼굴이라는 대상을 통해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에서의 순수한 모습과, 매일 아침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모습을 만드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줌으로 해서 표현해보고자 한다.

양가감정이 과잉이 되면 정신과적 병이 되기도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양가감정은 인간의 정상적인 범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범주로 하고, 결코 과하지 않은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표현하기로 했다.

사람의 순수한 얼굴, 그리고 반대되는 진한 화장을 통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과한 또는 순한 양면성을 띄고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누구나, 모두들, 자기의 행복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가?

이러한 모습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 나갈 것이며,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 해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띄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양가감정을 연작 형태로 계속해서 작업을 할 예정이다.

민효기, The remains of 2017-Coffee, 72.5x109cm, digital inkjet pigment print, 2018

The remains of 2017

우리는 매일 너무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습관적이고 일회적인 만족을 위해 소비한 수많은 제품들이 나를 스쳐가듯 빠르게 사라지고 만다. 언젠가부터 나를 기쁘게 하고 사라져 잊혀 버리는 것들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들의 소멸을 잠시 보류시키고 백 년 정도 붙잡아두고 싶어졌다.

나는 출근하는 와이프의 손에 들려주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내고 존경하는 박이추 선생을 따라잡으려는 듯 정성스럽게 드립을 내렸고, 아침 식사 후에는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치약을 두툼하게 칫솔에 묻혀 한껏 거품을 내었다. 그리고는 서랍을 열고는 어느 양말을 신고 출근하면 더 좋은 하루가 될지를 잠시 생각했다. 거의 모든 주말 저녁에는 맥주캔 또는 와인병과 와인코르크를 가치 있는 것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변환하는 일을 해왔다. 또 회사에서는 수많은 서류들을 생산하고 구겨서 폐기시키기도 하면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로버트 파커의 <The Greatest Wine> 책자에서 발견한 “Wine expression”은 우리의 삶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날 아침에 새로 산 외투와 맞춰 신었던 거만한 양말, 성공적인 업무를 끝내고 마셨던 위풍당당한 커피, 어느 비 오는 날 마셨던 근심 어린 와인, 오랜 기다림 끝에 승인을 득한 생기발랄한 결재 서류 등등. 지나치게 표준화되고 박제된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도시생활에서 우리가 다양한 삶의 경험을 이렇게 다채로운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다면 감성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획의 글

우리는 평생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인간의 본성, 존재에 관해 성현들이, 성서와 경전, 철학서들이 정의하고 정리해왔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하며 여전히 아리송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구상에 60억 인구가 산다면 60억 개의 정체성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현대예술이 추구하는 가장 으뜸 주제가 ‘정체성’인 까닭이다.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제라드 헴스워스(Gerad Hemsworth)는 예술의 속성 중 하나가 ‘나와 내 주변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되돌려 받고 서로 화답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철학은 시작되었으리라고 보며 예술이 그렇게 흘러왔을 것이다. 주로 좋은 대답은 현명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면 사진예술의 출발점도 ‘지혜로운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우리는 누구이며 당신은 누구인가?

장일암 (사진작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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